맞벌이 신혼부부의 경제권 쟁탈전
내 거인 듯 내거 아닌 내 월급. 결혼 후 경제권을 빼앗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신혼 초 한 번은 겪는다는 경제권 쟁탈전. 경제권은 서로에 대한 주도권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 집착하게 만든다. 결혼 후 경제 관리,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주말,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과의 대화는 경제권 쟁탈전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시작은 이랬다. 최근 경제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결혼 3년 차 J가 얼마 전 남편에게 생활비 청구 이메일을 받았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던 것. ‘최근 당신이 사용한 가족 카드 내역 및 생활비를 청구합니다’라는 짧은 문구와 함께 첨부한 엑셀 파일을 열어보고는 소름마저 돋았단다.
커피값은 기본, 주말 나들이를 즐긴 공원에서의 주차비 3000원까지 칼같이 반으로 나눠 청구했는데, 그런 남편의 지독함에 치가 떨렸다고. 자신보다 남편이 돈 관리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결혼 초부터 경제권을 넘겼던 그녀였지만 결혼 생활 3년이 되도록 마이너스 통장을 면치 못하자 경제권을 넘길 것을 요구했고, 현재 그녀는 하늘이 무너져도 경제권은 절대 못 준다는 남편과 3개월째 전투 중이다. 그가 통장 관리에 대한 욕심과 야망으로 가득 찬 남자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친구는 열변을 토했다.
심지어 부부 사이가 맞는지, 채무 관계는 아닌지, 도대체 자신들이 무슨 사이인 건지 헷갈릴 정도라고. 공동생활비를 뺀 나머지에 대해서는 각자 관리하고 있다는 결혼 2년 차 H는 공연히 자존심 때문에 통장을 각자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돈이 모이지 않아 문제란다. 게다가 갑자기 큰돈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남편보다 벌이가 적은 자신도 똑같이 돈을 내놓는 게 부담스럽다고.
그렇다고 이제와 통장을 합치자니 누가 관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 통장을 아예 각자 관리하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겠다 싶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듯했다. 많은 경제 전문가가 돈을 모으려면 결혼과 동시에 서로의 경제 상황을 솔직하게 밝힌 후 통장을 합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 통장을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는 부부의 몫이다.
얼마 전 결혼한 가수 백지영이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무리 없이 본인이 통장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남편 정석원이 흔쾌히 그녀에게 경제권을 넘겨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쉽게 생각하면 쉬운 일이다. 일단 경제권이 관계에 대한 주도권이라는 생각부터 버리자. 통장 관리자의 조건을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아닌 성격이 꼼꼼하고 재테크에 재능 있는 사람으로 판단하자.
즉, 돈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통장 관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통장 관리를 맡은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등 규칙적으로 가계 내역에 대해 보고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공동 운영도 좋다. 스마트 시대에 걸맞게 가계부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가계부를 공동으로 작성하는 것. 재테크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두 사람이 운명공동체라는 강한 연대의식도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결혼 후 경제권 결정은 통과의례다. 언쟁의 골이 깊어지면 부부 사이도 나빠지는 데다 평생 싸움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결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