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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이야기

애완동물은 되는데, 아이는 안 된다? '노 키즈 존' 앞에서 작아지는 엄마들

블랙앤화이트 0 19 0

포털 기사를 읽다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타이틀, '대한민국의 위기, 저출산'. 아이들이 줄어가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지원을 고민하고 있지만 정작 아이 엄마로서 크게 피부로 와 닿는 게 없는 것도 사실이죠.

다만 외출할 때마다 종종 깨닫게 되는 건 있습니다.

'노 키즈존' 앞에서 이제 저는 '아이를 동반한 어른'이라는 새로운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들은 왜 외식을 해야 했나

저는 결혼 전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식당에 가는 것이 두려웠던 아가씨였습니다. 겨우 자리에 앉아도 대기 줄에서 저 사람이 언제 다 먹나 지켜보고 있는 눈들이 있는 탓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어야 하는 일도 고역이었지만 아기 울음소리, 아이들 만화영화(부모들이 핸드폰으로 틀어주고 본인들은 먹고 있는 광경)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죠. 그때는 저도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 많은데 아이를 데리고 올까(굳이 그렇게까지), 식사시간에 왜 만화를 틀어주는 걸까(교육상 안 좋을 거야) 하고요.

입장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버린 지금은 사람 많은 그 식당에 굳지 아기를 데리고 와서 까지 먹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식사시간에 무어라도 틀어주고 쥐어주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당시 엄마들의 마음을 대물림 받는 몇 년의 시간 동안 타인들의 시선은 제가 아가씨였던 그 때 보다도 몇 곱절은 더 날카로워진 것 같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어른이라는 이유 하나로 말이죠.

 

프리패스에서 입장불가가 되기까지

예의범절 혹은 매너라고도 불리는,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은 어른들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동안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어느 정도 너그러이 배려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부모보다 타인이 너그러운 경우도 많았죠.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애들은 다 그렇다'며 허허 웃음으로 툭툭 털어버리는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어른들이 점차 사라지게 된 건 공공장소에서 부모로서, 아이의 보호자로서의 책임을 다 하지 않고도 당당한 몇몇 어른들 때문이겠죠. 대중은 이들을 '맘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이 식사중인 데도 불구하고 아기 응가 기저귀를 대수롭지 않게 간다거나,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를 저지하지 않는다거나, 고성을 지르는 아기를 옆에 두고도 방치하기도 하고, 먹고 간 자리를 초토화 시켜놓고 정리 없이 당당히 문을 나서는 등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함께하는 공간에서 지켜야 하는 당연한 규칙들이 '아이'라는 프리패스 앞에서 왜곡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완동물은 OK, 아이는 NO?

문제는 모든 '아이를 가진 자'가 '잠재적 맘충'으로 취급 받으며 동급의 혐오를 받게 되는 데 있습니다. 애완동물은 출입이 가능하지만 아이는 안 된다는 노키즈존의 충격은 훈육의 이유를 제외하고도 과도하게'타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딘가를 가기 전에 아이와 부모가 함께 할 수 있는 곳인지를 먼저 검색하는 습관도 생겼죠. 민폐가족이 되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아이는 어른을 보고 배워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아이는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에 제약을 받아야 하는가, 하고요. 근본적인 원인과 이유가 어찌되었든, 이제 우리 사회는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과 할 수 없는 공간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어쩌면 우리사회의 새로운 경계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과도한 것일까요?

아이들 혹은 아이를 동반한 어른은 잠재적 문젯거리처럼 인식된다면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세상은 어른들의 무언가를 보고 배우며 자라기 힘든 사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몇몇 부모들의 잘못이 우리 사회를 어른과 아이를 이분법처럼 구분했다지만 아이들은 분명 어른들과 함께 있을 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공중도덕에 협상이란 없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아이들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공존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교육법을 바꾸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식 육아법에서 어쩌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식당과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얼마든지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고, 심지어 아이들은 식사시간 내내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죠. 아이들을 위한 키즈밀이 따로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어른과 같은 식단의 식사를 하고, 식사시간에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만큼 그 안에서 나름의 자율성을 갖습니다. 그것이 비단 프랑스 아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까요?

프랑스식 육아는 명확합니다. 사회가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 걸맞은 태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도 안 되죠. 공공장소에서 아이와 협상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미래의 아이들에게 어떤 시선을 물려줄까요?

 

노키즈존을 찬성하고 반대하고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조심스레 건네 봅니다.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공공장소에서 한결같이 시끄럽습니다. 아마 미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죠.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의 일원으로서 폭넓은 시야와 포용력을 키울 수 있으려면 지금의 어른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주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이는 아이답게, 하지만 함께하는 법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것. 비단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에게도 공동의 몫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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