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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기술지주회사[단국상의원] 특강자료입니다. 수의에 관심있으신 분은 읽어보세요!

마늘님 0 6 0


 

특강자 료

단국대학교 기술지주회사

[ 단국상의원 ]

일자

2017. 08. 21()

7(본문7)

자료 문의

최 규 동 교수

∙☎ M.P. 010-3200-6837

제 목

웰다잉의 핵심 장례식은 어떤 의미인가?’

 

(특집 특강 제안자료)

웰다잉의 핵심 장례의 의미

일제잔재 삼베수의 등장배경 첫 공개 장례업계 파란

 

복식을 통한 식민통치, 죄인의 옷 삼베수의 의례준칙통해 강제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제는 복식을 통해 문화를 격하시켜 통치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인 삼베수의를 등장시킨 배경과 현재까지 전통으로 정착된 과정을 밝힌 논문이 처음으로 발표돼 국민적인 파란이 일고 있다

 

단국대학교대학원 전통의상학과 최연우 교수가 쓴 논문 "현행 삼베수의의 등장배경 및 확산과정 연구를 보면 일제는 조선의 식민통치와 복식을 상당히 주의해서 연계정책을 펼쳤는데 그 사례를 보면 대한제국의 황제 및 관원복식에 사용된 장식과 무늬를 모두 일본보다 등급이 낮게 규정하였고, 식민통치기간 내내 조선복식 개량 론을 내세우며 백색 옷을 금지하고 흑색 옷을 장려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백색 옷으로 인한 빨래 등 가사 일에 소요되는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함이었고, 군수물자확보를 위해 국민복이나 몸빼 착용을 강요한 것은 물론, 조선의 죄인이 입던 삼베옷을 돌아가신 고인에게 수의로 입히도록 하는 등 문화격하를 자행하였는데 이는 물자절약과 노동력 착취를 통한 전쟁군수물자 확보 통치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논문을 보면, 조선총독부는 19193.1만세운동 이후 공포분위기의 위압적 무단통치대신 효율적인 식민통치를 위해 민족전통문화에 관심을 두고 문화통치로 전환하였는데 문화격하를 통해 열등의식을 심어 통치의 명분을 보장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의 물적, 인적 자원을 수탈해 일제 경제부흥과 전쟁준비를 다지고자 했다는 것이다.

 

본래 우리전통은 상장례 시 돌아가신 고인에게 가장 화려하고 좋은 수의를 해드리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이는 이승의 마지막 옷이요 저승에서 영원히 입는 옷이기 때문이었다.

논문을 보면 1474<국조오례의>, 1680년 이재의 <사례편람(四禮便覽)>(의례서), 1758<국조상보편>등에 나타난 조선의 수의 관련 규범을 보면 전부 견직물(실크)이거나 면 등이다.

한일강제병합 이전 삼베옷은 조선의 죄인이나 노비 등이 입던 옷이고 상주와 가족, 친척들이 사자(死者)와의 관계를 따져 입는 상복(喪服)의 소재였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처음 삼베수의를 제안한 것은 김숙당의 <조선재봉전서>(1925)를 통해서다.

김숙당은 1925년에 <조선재봉전서>에서 수의 소재를 세포(細布) 즉 고운 삼베로 제시하면서 중류사회에서 보으로 하는 것을 표준삼는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일반적인 풍속은 고급직물을 사용하는 것이었고 이는 일제가 친일파 유진혁(柳鎭爀)을 통해 실시한 민속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조선총독부에서 설립한 공립학교 교원 신분이었던 김숙당은 1916년부터 6년간 총독부로부터 직접 급여를 받았고 이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위 책을 완성한다.

 

이후 1934년 조선총독부 우가키 가스시게 총독은 <의례준칙>을 통해 혼례, 장례, 제례를 규범화하였는데 이때 수의로 삼베수의를 사용하게 하고 각 지방별로 의례준칙 시행서가 발행된다.

총독부는 이후 수년 간 온갖 조직을 동원하여 폭압적인 방식으로 준칙을 실행해나가는데 먼저, 준칙 발표 당일 학무국장 명의로 도지사와 소속관서의 장()에게 각각 공문 사() 261의례준칙 제정에 관한 건을 보내 준칙의 반포와 보급을 철저하게 하라고 지시한다. 1934년 당시 총독부는 본부(중앙관)에 총독관방, 내무국, 재무국, 농림국, 법무국, 무국, 경무국이 있고, 소속관서로 중추원, 각 도, 학교, 재판소, , 철도국, 체신국, 세무감독국, 임시토지조사국, 세관, 영림창, 의원 등이 있었는데 이들 소속관서의 책임자와 도지사에게 공무원들이 솔선하여 준칙을 실행하게 하고, 보급을 위해 사회교화와 사회사업 관련 단체, 년과 부인 단체, 농촌진흥과 풍속 교화 단체 등 여러 단체를 동원하며, 실행을 위해 실행조합까지 설치하게 한다.

또 학교의 교직원과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형회를 동원하고, 강연 촉탁원들로 하여금 순회 강연회와 이동 좌담회를 개최하게 한다

이상과 같이, 의례준칙의 시행은 조선총독부의 지휘 아래 도지사와 참여관, 군수, 면장, 이장, 구장, 유지 등이 주축이 되어 여러 위원회 및 장려회를 조직하여 실행하고, 전통의례의 세부의절과 함의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유림회까지 총동원되어 이념적 합리화를 도모하며 진행되었다. 법률적 효력이 발생되지 않는 준칙으로 규정하여 권고나 장려의 방식으로 일을 진행시켰으나, 실행 단체를 조직하여 단체별로 위약금을 징수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실제에서는 강제로 시행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단체의 회원이나 가족이 준칙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회원에서 탈퇴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사회적 고립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최소 단위의 마을까지 준칙 실행을 강제했으므로, 마을이나 개인이 이를 실행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준칙이 강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 1969116일에 대한민국 정부는 법률 제2079호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대통령고시 즉 요즘의 대통령시행령을 통해 식물성섬유 즉 삼베수의를 쓰도록 규정하였고 1973년 다시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과 시행규칙을 통해 위반 시 벌금과 과태료가 부과되는 강제규정을 마련하여 단속하기도 한다.

줄기가 삼베수의 원료인 대마재배로 인해 대마초의 폐해가 커지자 정부는 1971년 대마 관리법을 제정하여 대마재배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강력한 단속에 나서는바, 대마재배면적이 대폭 축소되었고 1980~1990년대 들어 경제적 풍요로 인한 수요급증과 노부모의 수의준비 급증 등으로 삼베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게 된다.

여기에 1973년 장의사 업이 허가제로 등록되며 포목점들에서 수의를 팔 경우 가정의례준칙위반으로 단속되기도 하는 등 일부 장의사에 의해서만 삼베수의 판매가 허용되자 가격이 급등하였고 정부는 폭리를 막기 위해 영업요금 최고한도액을 정하기도 하는데 결국 1993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통해 신고제를 자율화하고 도심에도 장례식장을 설치하도록 하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하게 된다.

 

이런 제도적 완화와 더불어 일본에서 들어온 상조회사와 전국적으로 설치되는 장례식장을 통해 삼베수의가 우리의 전통처럼 확고히 자리 잡게 되는데 중국산 짝퉁 삼베수의가 시장을 완전히 장식하게 되고 고가의 전통삼베는 명맥만 유지하게 된다.

특히 일본에서 건너온 상조시장이 자리 잡고 급성장하면서 업자들에 의해 말도 안 되는 속설들까지 더해져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된다.

모시를 쓰면 자손의 머리가 하얗게 되거나 새치가 생기고 비단수의를 쓰면 썩지 않아 몸을 칭칭 감고 구더기가 난다거나 삼베수의를 써야 해충이 없고 잘 썩는다는 등 입에 다루기 힘들 정도의 수준 낮은 속설들이다.

여기에 짝퉁 풍수지리가 들이 황색삼베수의 입고 명당에 묘를 잡으면 발복하여 후손이 잘된다는 전혀 근거 없는 속설까지 가세하며 삼베수의 신화를 만들어내고 아무런 정보가 없는 유족들은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 관계자, 삼베수의 유통업자들이 만든 황당한 속설을 따라 고인을 죄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료를 통해 본 바와 같이 역사적 사료를 통해 이론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여 삼베수의의 등장 및 정착배경을 학술적으로 명확히 밝혀낸 사례가 처음인데 최연우 교수의 논문은 단국대학교 대학연구비를 지원받아 연구되었다.

 

화장을 하던, 매장을 하던 돌아가신 분이 마지막 입는 옷이요, 저승 내세에서 영원히 입는 옷이 수의다.

화장이나 매장은 영혼이 없는 육신을 모시는 방법일 뿐 수의는 고인이 입게 될 영원의 옷 인 것이다.

기독교든 불교든 유교든 내세가 존재하거나 영혼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면 수의는 신중히 선택해야한다.

한국 전통상례의 예법은 고인에게 비단, 모시, 무명 등 고운 옷을 입히고 삼베옷은 망자 본인이나 가족이 죄인임을 형상화하기 위해 입거나 가난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의미도 나쁘고 보기에도 흉측하여 전혀 권장할만한 것이 못되는 삼베수의를 우리의 전통으로 알고 계속 사용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더구나 현행 삼베수의는 거의 대부분 중국산 짝퉁일 뿐이다.

삼베수의를 제외하고 비단이나 면, 화섬 등 현대화된 섬유도 모두 사용하여도 좋다고 본다.

화장을 할 경우 소재는 삼베를 제외하고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매장을 할 경우에는 화섬은 썩지 않으므로 피해야 한다.

발인 전날 고인과의 마지막 작별인 염습의 때 수의를 사용하게 되고 기능적으로 염습을 하기 위해서는 폭이 넓은 옷이 필요하게 되는데 기능적으로나 미적으로 안성맞춤인 옷이 우리의 전통 옷이다.

이때 고인과의 마지막 작별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게 되는데 보기에도 좋고 의미도 좋은 수의로 작별을 하고 고인은 예쁘고 좋은 옷으로 영원복락을 누리게 되길 기원하는 것이 모든 자손들이 바라는 것일 것이다.

완장도 의례준칙에 등장한 것으로써 문상 갈 때 상주를 모르고 가는 사람이 없는데 완장을 차야할 일이 하등 없었다. 일제가 상주들에게 완장을 차게 한 이유인즉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고종의 장례식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되자 상장례 시 많은 사람이 모여 조선총독부를 비판하지 못하도록 주도자를 표시한 것이 팔에 찬 완장이어서 지금 상주들이 팔에 완장을 찰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파란이 일고 있는 현행 삼베수의의 등장배경 및 확산과정 연구논문을 발표한 최연우 교수가 있는 단국대학교는 교내 석주선 기념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시대 출토복식 즉 수의와 문헌사료 등을 바탕으로 현대화된 전통수의 수십 종을 개발하여 단국대학교 기술 지주회사 산하에 단국상의원()를 설립하여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석주선 기념박물관은 조선시대 분묘에서 출토된 수의를 국내 최대 규모로 소장하고 있다.

 

최연우 교수와 함께 전통수의 개발 및 상장례 관련 연구를 수행하였고 웰다잉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 단국대학교 최규동 교수는 수의의 의미는 물론 웰다잉이 시대적 화두인데 이는 아름다운 노년과 아름다운 마지막을 보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으로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의미와 의례 등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 한다.

웰다잉을 위해서는 본인이 잘 준비하여 아름다운 노년을 보낼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여의치 않을 경우 가족이나 자녀들이 교육을 통해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도 좋은 가정의 모습일 것이다

 

최규동 교수는 용인시에서 정규적으로 노인 및 주부등을 대상으로 웰다잉 관련 특강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 및 각종 단체들로부터 웰다잉분야 최고의 교수로 평가 받고 있다

 

본 자료와 관련하여 귀 기관에서 특강을 원하시면,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최규동 (010-3200-6837)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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